[경향신문] 짚풀생활사박물관 인병선 관장

2020.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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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은 박물관

(18) 짚풀생활사박물관 인병선 관장

짚풀문화 맥 잇기… 여치집 만들기 등 체험교육도

1970년대. 방방곡곡, 농촌 마을에 ‘새마을 바람’이 불어닥쳤다. 확성기는 밤낮 없이 ‘잘살아보자’고 노래했다. 초가집은 농촌 빈곤의 증거물이 됐다.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슬레이트와 양철을 얹었다. 사랑방에서 철거덕거리던 가마니틀도 멈춰섰다. 농민들도 “그 까짓 것” 하며 짚신, 짚망태, 짚삼태기를 내다버리고 태웠다. 비닐과 플라스틱 제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18) 짚풀생활사박물관 인병선 관장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75·사진)은 “이러다가 몇년 안돼 전통 짚풀문화가 증거도 없이 사라지고 말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 관장은 “안타까워” 우리나라 전통 짚풀문화의 ‘산 증거’들을 챙겨 모으기 시작했다. 남편(신동엽 시인)과 사별한 그는 그런대로 생활이 자리잡히자 미뤄놨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70년대 후반이었다.

 

대학 때 철학을 전공했지만 전통문화에 마음이 끌렸다. 문화 연구답사 모임을 따라 전국의 사찰과 고택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사찰·고택 답사가 영 마뜩지 않던 그는 늘 일행과 떨어져 사찰 대신 사하촌(寺下村), 고택 대신 농가를 돌아다녔다. 사찰이나 고택의 ‘지배자 문화’가 천성적으로 싫었다. 그는 “사회주의 경제학자였던 아버지(인정식)와 농민에게 애착을 가진 남편의 영향이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홀로 답사’를 다니며 만난 게 짚풀문화였다.

그는 “민중의 일생은 태어나 금줄 치고 초가집에 살다, 죽어 초분에 묻히는, 짚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짚과 풀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짚과 풀의 문화, ‘짚·풀문화’다. 고향이 평남 용강인 인 관장은 어려서부터 동네 어른들이 사랑방에 둘러앉아 짚신 삼고, 새끼 꼬고, 가마니 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는 “짚일은 농한기 때만 일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한 해 내내 필요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는, 농사의 일부였다”고 돌이켰다. 



인 관장은 틈만 나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시골마을을 찾아다녔다. 짚으로 신 삼고, 가마니 짜고, 삼태기와 망태·도롱이를 만드는 촌로들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짚풀로 만든 생활용품들을 얻어와 모았다. 살림살이를 그냥 가져갈 수 없을 땐 돈을 쥐여주고 사들이기도 했다. 30여년 모은 짚풀 관련 민속자료는 4000여점. 모으다 보니 제기(祭器) 100여점과 조선못 1000여점도 수집하게 됐다.

박물관을 하려고 모은 것은 아니지만 짚풀문화를 알리려면 박물관이나 연구소가 필요했다. 인 관장은 93년 서울 청담동에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열었다. 현 위치인 서울 종로구 명륜동으로 이전한 것은 2001년.

박물관 관장으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짚풀문화 교육이다. ‘짚풀문화연구회’를 조직, 30여가지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육하고 있다. “10년 안 가 (맥이) 다 끊어져 버릴” 짚풀 기능 보유자 제작기법의 보존·계승도 짚풀문화 교육과 같은 맥락이다. 30여년 동안 채록해온 60여개의 제작기법 영상과 2만점의 사진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있다.

인 관장은 2008년 박물관을 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다. 박물관의 용도가 바뀌면 박물관과 소장품 모두 국가에 귀속되도록 한 것이다. 짚풀문화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하려는 뜻에서다. 그는 짚풀문화를 체험하러 온 아이들이 “짚 냄새가 구수하고 좋다”고 할 때 가장 즐겁다. “아하, 우리 민족은 어쩔 수 없이 짚풀 DNA를 물려받았구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 짚풀생활사박물관 가는 길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균관대 가는 쪽으로 가다 오른쪽 첫 골목 안에 있다. 앞의 한옥은 체험학습장이고 뒤쪽 건물이 박물관이다. 도롱이, 망태, 삼태기, 뒤주, 씨오쟁이 같은 옛날 짚풀용품과 재료, 제작용구, 제작방법 영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짚풀 기능 보유자들이 최근 만든 작품들은 따로 전시하고 있다. 체험학습장에선 여치집·부들 두꺼비·빗자루 만들기 등을 직접 해볼 수 있다. 오는 29일까지 여름방학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0월30일엔 서울에 사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참여하는 ‘짚풀공예 솜씨겨루기 대회’를 열 예정이다. 서울 명륜동 2가 8-4 (02)743-8787 www.zip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