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되 끝나지 않은 `금강`의 무대 <오마이뉴스, 2005.7.4>

2005.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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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오가며 공연된 가극 '금강'의 아쉬운 마침

문호근에 의해 1994년 초연된 이래 방북 공연이 꾸준히 시도되었고 2004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던 가극 '금강'의 평양 공연은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넌 끝에 2005년 6월 16일 평양봉화예술극장에서 실현되었다. 그리고 지난 6월 29일 경기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남측 관객'을 위한 2회의 공연을 마치고 대장정을 끝냈다.



▲ 북과 남으로 이어진 끝 공연의 끝 인사. "남측 관객"들은 "북측 관객"이
그랬듯이 기립박수로 감동을 표현했다. ⓒ2005 곽교신

신동엽에 의해 서사시로 창작되고 문호근에 의해 음악극으로 변신한 '금강'은 이번에 연출을 맡은 김석만에 의해 분단 해석을 재외국 동포로까지 확장하면서 '금강'의 주제가 민족극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통일이 한반도 내에 국한된 지정학적 문제가 아닌 것과도 넓은 의미에서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2004년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 통일맞이'에서 기획되고 추진되었던 '금강'의 방북 공연은 이른바 '조문 파동'으로 방북공연 실패를 겪었다. 역시 통일맞이에서 추진한 2005년에도 공연자금 확보라는 원천적인 난제부터 시작해, 6월 1일 북측의 느닷없는 방북인원의 대규모 축소 요청에 마지막 리허설을 평양 공연 성사 여부가 미지수인 채로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연습장에서 느껴지는 배우들의 열정은 집념에 가까웠다. 그들에게는 국내 공연 평균 출연료도 지급하지 못했다. 그렇게 '본격 완성 무대극의 첫 평양 공연'이 된 '금강'은 어려운 과정을 거쳐 평양으로 간 작품답게 북측 관객들의 기립박수 갈채 속에 일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일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계속되어야 할 '금강'의 무대가 내적 외적 요인으로 앞날의 아무런 기약이 없이 끝났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이 신동엽의 시를 판금조치한 것과 '금강'의 무대가 기약없이 막을 내린 것은 원인은 전혀 다르나, 결과는 전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는 마치 잘 진행되어도 막연히 불안하고 느닷없이 중단되어도 막연히 희망을 갖는 많은 남북협력사업들과 성격이 매우 흡사하다. 남북이산가족이 짧은 만남 후 기약 없는 이별로 헤어지지만 정말로 기약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드문 것과도 같다.

중단과 연속을 함께 갖는 이런 구조는 동학군의 떼죽음과 실패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해석하는 '금강'의 역사 인식과 다르지 않다. 또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린 꼭 평양에 간다"는 확신으로 연습에 몰두하던 배우들의 투지와도 다르지 않다. 이는 전체적으로 신동엽이라는 작가의 미래안(未來眼)일 수도 있다.

평양에서 그랬듯이 안산 공연 끝에서도 진아 역의 길성원(33)이 '여러분 안녕, 안녕, 언젠가 또 다시 만나지리라'는 이별의 노래를 부르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길성원을 비롯한 많은 배우가 전후 세대이다. 그들에게 분단은 몸으로 겪은 경험이 아니라 교과서 속의 역사일 뿐이다. 그러나 그 감동의 격정은 세대간 차이를 훌쩍 넘었다.


▲ 하늬와 진아의 이중창(이별의 노래). 동학으로 비롯된
이들의 사랑은 격렬하게 내닫는 극의 감정선을 주제 범위
내에서 훌륭하게 조절한다. ⓒ2005 곽교신

각자 생업을 가진 채 공연을 위해 열정 하나로 꾸려진 극단 '금강 공연팀'은 많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모든 남북 교류와 매우 닮았다. 국민의 많은 수가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각종 여론 조사 통계 수치와도 비슷하다.

제작비가 난감했던 '금강' 공연에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도 자체 남북협력기금에서 2억을 지원하여 숨통을 틔웠던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액수는 지방 도시 시민 축제에 보통 수억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큰 돈은 아니며, 거꾸로 '금강' 평양 공연으로 형성된 남북 민중간의 진한 공감대를 생각하면 투자 효과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된다.

본격 무대극의 첫 남북 교류답게 이번 평양 공연 무대 바깥의 인간적 교류도 감동이 진하다. 무대 적응 시간이 부족했던 남측 단원들을 위해 평양봉화예술극장 직원들이 기꺼이 새벽 3시에 퇴근했다는 등의 뒷얘기는 공연의 성사 여부를 떠난 감동이다.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남북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남북 분단을 여느 분쟁 지역의 심각한 민족 갈등의 하나로 보는 일부 국가들의 시각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가극 '금강'이 큰 장애 없이 남북을 오가며 공연되는 날, 정치적 통일에 상관없이 민족의 정신적 통일이 완성되는 날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쉬운 지방 공연


▲ 국왕이 외세에 조정되고 부패 관리에 놀아나는 이 장면은 '동학농민전쟁'의
역사적 당위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 중 하나. ⓒ2005 곽교신

금강은 연장 공연이 되어야 한다. "이 무대가 지방에서도 공연되어 더 많은 국민이 봤으면 좋겠다"던 한 관객(박민자. 31. 서울)의 말은 공연 후 만나 본 대다수 관객의 말이기도 하다. 공연 지속을 위한 추가 지원 가능성을 묻는 기자에게 똑 부러지는 대답을 하기 곤란해 하던 손학규 지사의 입장은 이 공연 지원과 관련한 여러가지 현실적 어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금강은 남과 북을 오가며 계속 흘러야 한다. 또 북쪽에서도 어떤 강 하나가 남쪽으로 흐를 수 있어야 한다. 정치 행위에 치밀한 계산이 빠질 수는 없겠으나, 그 계산은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남북 정상이 손잡고 마주 웃던 순간의 회한과 반가움까지 파고들 만큼 정밀하지는 못하다. 진솔한 감동이 모든 체제 장벽을 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 껍데기는 가라 ! ⓒ2005 곽교신

아소 역의 원로배우 장민호는 '금강이 첫 길을 닦아 놓았으니 이제 보다 많은 남북교류가 이어져 통일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의 연기가 무한 반복연습에 의해 외형이 완벽하긴 하나 내면의 연기가 없는데, 남북 교류로 다양성이 보태져서 내면의 연기가 더해진다면 북의 연기는 세계 정상이 될 것"이라며 미래를 점쳤다.

안산 공연 후 무대 인사에서 손학규 지사의 즉석 요청으로 신동엽의 부인 인병선은 '껍데기는 가라'를 떨리는 음성으로 낭송했다. 인병선은 평양 만찬장에서도 이 시를 낭송하여 감동을 일으킨 바 있다. 2005년의 우리에게 분단 현실은 한 민족 시인이 일찍이 외쳤던 진정한 의미의 '가야 할 껍데기'이다. 벌써 반쯤은 벗겨져서 껍데기는 가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가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