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사람이 오렸다냐 구신이 오렸다냐...

2005.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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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오리기'가 원래부터 무속 무구를 만들기 위한 방편은 아니었지만, 우리 고유 생활문화로 부활하는데 따르는 현실적 문제는 종이 오리기 작품 하면 일반인들이 무속용 장엄구를 먼저 떠올린다는 점이다.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종이 오리기> 표지
ⓒ2005 현암사
이런 편견을 도전적으로 깨뜨리려는 노력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종이 오리기'>라는 책으로, 현암사에서 나왔다. 필자가 이 책의 발간에 "도전적"이라는 소감을 붙이는 이유는, 적당한 명칭조차 없던 이 작업에 "종이 오리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지난 10여 년간 전국을 돌며 전통 종이 오리기 자료를 수집 연구하던 인병선(짚풀생활사박물관장, 문화재 전문위원)씨의 문화 투사와도 같은 끈질긴 노력 때문이다.

국배판 223쪽으로 나온 이 책은 우리 전통 문화 관련 서적들에서 풍기는 고루한 맛이 전혀 없다. 종이 오리기 부활에 가장 우려되던 점인 '속적 냄새 제거'에도 책 내용 전체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여 표지에서부터 종이 오리기가 밝고 깔끔한 "어린이의 놀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북 디자이너의 딸로 알려진 표지 모델 최예나(6) 어린이의 장난스런 표정은 우리의 친근한 생활문화였던 종이 오리기가 어린이들로부터 다시 사랑을 받게 될 조짐으로도 보인다.

초등학교 특활 과목으로 이미 널리 퍼져 있어 우리의 고유문화인 줄로 착각하는 이가 많은 일본의 '종이 접기'에 맞서는 우리의 문화 자존심으로 자리 매김하기에 '종이 오리기'는 그 가치가 충분하다. 책의 서문에서 보이는 인병선씨의 자신에 찬 얘기는 이 책의 발간 의도를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종이접기는 일본 자신도 그 기원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서기 610년에 고구려의 담징이 일본에 종이 제조법을 전한 후 신사 등에서 제사 용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종이오리기와 종이접기가 함께 사용되다가,…(중략)… 일본은 종이접기를 학교 교육현장에 적극 활용하면서…(중략)… 종이접기를 단순한 전승 놀이에서 지능개발 교재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본의 예는 종이접기보다 훨씬 교육적 상상을 많이 유발시킬 우리의 종이오리기가 훌륭한 지능개발교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함을 보여준다."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한 종이 오리기 작품(책에서는 '평면 작업'으로 명명)을 처음 보면 대개는 직접 오려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관련 기사에 사진으로 실린 문양만 봐도 그런 의문은 기우에 불과하다.

출판을 위해 수집된 자료 속의 사진을 보고 필자가 "어디 한 번 나도 해볼까?" 하면서 종이를 접어 오려낸 것이 기사에 실린 결과물이다. 도구는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가위뿐이었다. 물론 어떤 도움이나 자문도 없었다. 그건 이 종이 오리기란 작업 결과의 우수한 조형미나 디자인 감각에 비해 그 작업이 의외로 매우 쉬움을 의미한다.

관련기사
한지로 오려내는 환상의 연속 무늬

저자는 "이 책 아무 쪽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펴놓고 종이(한지)를 접어 칼이나 가위를 들고 책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 도무지 불가능할 것 같던 문양이 내 손에서 오려진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종이 오리기는 매우 쉽다"가 이 책에서 저자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화두다.

또 "그렇게 쉬운 것이 종이 오리기이니 식탁 유리 밑에도 깔고 상차림에도 깔아서 예전에 우리 어머님들이 그랬듯이 아주 적은 돈으로 화려한 전통 문화를 즐기자"가 저자가 이 책을 내는 소박한 기대이기도 하다.

책 끝에는 종이 오리기가 그나마 지금까지 원형이 유지된 공로자라 할 사찰과 무속 무구로서의 종이 오리기가 부록처럼 실려 있다. 이들이 전통 종이 오리기 문양들을 지금껏 사용했기에 그 전통이 유지될 수 있었던 문화 전승자로서의 공로가 있는 반면, 종이 오리기를 원래 무속 무구로 오해하게 하는 이미지의 역효과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종이 오리기 전통을 되살릴 자료 수집이 가능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록처럼 실린 끝 부분은 종이 오리기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시대적 균형 감각을 충실히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걸 사람이 오렸다냐 구신이 오렸다냐..."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충남 서산의 장세일(충남무형문화재 설위설경 기능보유자) 법사는, 가톨릭 신자로서 '앉은 굿당'을 찾는다는 다소 염려되고 무거운 마음이었던 기자를 단숨에 안심시키며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장 법사의 말은 이러하다.

"아주 세밀하고 복잡한 무늬를 오려 굿당에 걸어두면 귀신이 와서 보고 환장을 허며 이런단 말이지. '아니 이런 무늬를 (잘 찢어지는) 종이로 오려냈다니 대체 이걸 사람이 오렸다냐 구신이 오렸다냐…. 이 놈(무늬를 오린 자)은 내가 덤빌 놈이 아니구나' 하고 물러난단 말이요."

장 법사가 엄숙하고 영험어린 투의 언어로 훈계조의 말을 하더라도 인터뷰 기자라는 신분을 잊지 말고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함부로 논쟁에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 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실례하게도 장 법사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속의 권위며 위엄은 순전히 기자의 선입견이었다. 이 친근함은 종이 오리기의 특질이기도 하다.

무서우라고 걸어놓은 도깨비 상이 잘 들여다보면 오히려 친근하고, 민화에 그려진 호랑이는 백수의 왕다운 위엄은커녕 동네 강아지 같은 친밀감만 느껴지듯, 우리의 토속 신앙은 그렇게 순진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대체 이걸 사람이 오렸다냐 구신이 오렸다냐…" 하고 귀신이 알아서 물러가주길 바라는 그것이 우리 문화이고 우리 심성이다. IMF 구제금융으로 나라가 하루하루 국가 부도를 면하고 있을 때 금붙이 돌반지 결혼반지를 내놓던 것이 우리네 순한 심성이다. 같은 문화권인 중국인들은 평생 간직할 기념품인 금붙이들을 내놓는 한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도 중국과 한국의 종이 오리기가 다른 것도 재미있는 관찰 사항이다.

문화와 문화 인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그 문화에 접근하는 우리의 의식도 변화하기를 요구한다. 윗옷과 아래옷 사이에서 슬슬 맨살이 비치더니 배꼽이 나오고 급기야 팬티까지 당당히 밖으로 나오며 '보여주는 팬티'가 되어 '꼭꼭 감추는 옷=팬티'의 고정 관념을 거부하는 것도 문화형의 변화다. 옷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옷의 하나일 뿐이다. 슬쩍 훔쳐보는 것으로 끝나야지 눈을 꽂아놓고 자세히 쳐다봤다가는 낭패를 겪기 십상이다. 물론 생소한 예지만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문화 인식의 변화일 것이다.

오십 부근의 여성들만 해도 종이 오리기는 일상의 문화였다. 대부분 우리에게 종이 오리기가 무속 무구로만 인식되는 것은 불과 한 세대가 지나면서 생긴 문화적 오차다. 이 책이 종이 오리기를 생활에 되살려서, 좋은 우리 문화의 하나가 문화적 오차를 극복하고 다시 생명을 얻어 '보여주는 팬티'처럼 대중에게 당당히 인식 변화를 요구하는 계기가 된다면 어떨까.

이 책의 출간은 여염의 생활 문화였던 종이 오리기 부활의 신호탄일 것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종이 오리기를 즐기고 인근 관련 분야 민속학과 연계되는 활발한 연구 속에서 우리의 중요한 민속 문화의 하나를 꽃 피우는데 "우리 종이 오리기"가 밀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일본의 종이 접기가 세계 곳곳에 퍼지기까지 일본 문부성의 치밀한 계획 아래 130여 년이 걸렸음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